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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Y/LOG

[반야로/단마리]Endearing Night

by 빙마와리 2022. 7. 2.

드림 블랙웨딩 합작 :: https://kanatanaru.wixsite.com/blackwedding

 

 

 

 

 


 

 

 

 

 

 보름달이 뜬 밤. 둥글게 찬 달은 사람의 본능을 자극해 충동을 표출시킨다고 했던가. 15년의 세월 간 지하에 갇힌 채 드럼을 연주해왔던 단테는 그 산증인이었다. 그가 사슬에 매인 팔다리를 휘두른 것이 으레 보름날이었던 까닭이다. 지하의 어둡고 시린 감옥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은 지도 벌써 년 단위를 갱신 중인 그는 이제 본인이 원하는 순간 원하는 곳에서 마음에 드는 박자의 드럼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시절과 같은 충동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만월이 뜬 날의 단테를 휘두르는 충동은 그때와 전혀 별개의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단테의 연인, 마세 히마와리는 창밖의 달을 멍하니 바라보다 제 어깨를 그러쥐는 체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둥근 달이 뜨는 날이면 유독 열이 오르는 손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손길과 그 속의 충동을 받아들이며 해사한 붉은빛을 감추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숨 같은 입맞춤이 눈가에 내려앉는다. 얼핏 보기에는 다정한 애정 표현이지만 그의 형형한 눈빛을 발견하는 즉시 평가는 뒤집힐 것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불꽃에 달군 것처럼 거칠게 들끓는 눈동자를 고요한 침묵으로써 간신히 다스리는, 단 한 사람 앞에서나 내어놓는 그 꼴을 목도할 수만 있다면야.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히마와리는 단테의 이런 이면이 싫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을 원한다는 욕심과, 원하는 만큼 참아왔다는 배려의 방증이 아니던가. 하지만 매번 제 체력을 근심한 나머지 채 해소하지 못한 열을 홀로 삭이는 단테에게 미안하기도 했던지라, 달에 한 번씩은 꼭 불만 없이 그의 애욕을 받아들이곤 했다. 게다가…… 그런 단테에게 어쩐지 응석을 부리고 싶기도 했다. 평소의 당신도 날 밀어내지 않지만 이런 날에 더더욱 깊이 안겨 감정의 무게를 실감하고 싶다는 마음, 객기를 부리더라도 당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걸 당당하게 증명해내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자신의 이런 마음도 보름달이 부추긴 것일지도 모르지만. 평소에 주저했던 어리광을 표출하기 위해 히마와리는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밀착하고 목을 꼿꼿하게 세운다. 그에 응한 단테가 그녀에게 고개를 기울임으로써 온 시야에 깔리는 그늘. 단테의 코끝이 히마와리의 시선과 평행선을 그리고, 히마와리의 숨은 단테의 입술과 연직선으로 이어진다. 전혀 동요하지 않은, 되려 탐심이 동한다는 듯 가늘게 내려 뜬 심홍빛과 그 기색을 어렵지 않게 알아채고 마냥 맑게 깜박거리는 붉음 사이는 일직선. 두 사람의 심장 소리가 겹칠수록, 호흡 소리가 같은 박자를 갖추어갈수록 단테의 머리카락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땅거미를 자아 얇게 땋아낸 것만 같은 칠흑색 가닥 사이로 잘게 부서지는 달빛이 간지럽다. 꼭 베일 같다고 생각하며, 히마와리는 조심스럽게 그 장막을 걷어내었다. 만월을 빌려 제 연인의 눈을 보다 가까이 마주할 수 있도록, 그의 욕심을 보다 올곧게 껴안을 수 있도록.

 

 “단테.”

 “그래, 히마와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면사포 같은 거 알아?”

 

 결혼식 때는 하얀 걸 썼지만 검은 것도 괜찮았을 뻔했네. 히마와리의 뺨을 간질이는 칠흑 위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미끄러진다. 그 웃음이 속눈썹 사이로 흘러내리는 광경을 지긋이 목도한 단테는 문득, 면사포를 뒤집어쓰는 것이 제 쪽이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머리 하나는 더 높은 위치에서 그 얇디얇은 천 하나로 둘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시선을 나누고 숨을 옭아맬 수 있다면. 반투명한 막을 사이에 두고 세상으로부터 자신과 제 연인만을 유리하여 ‘제 것’을 오롯이 탐닉할 수 있다면 나쁠 것도 없었다. 탐욕에 찬 웃음소리가 땅거미로 만든 감옥을 맴돈다.

 히마와리는 면사포 같다고 하였으나 단테의 눈에 비친 이것은 영락없는 창살이었다. 손을 뻗어 바깥 공기를 휘저을 수는 있지만 온몸을 빼내기는 어려운, 애매한 너비로 늘어진 살. 거죽을 어루만지다 못해 온전히 집어삼켜 새하얗게 까득거리는 소리로 속을 채우고만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제 것을 가두어 놓고 길들이기 위한 감옥의 벽. 그 안에 갇힌 그녀의 착각을 바로잡지 않는 것마저 길들이는 과정의 일환으로 삼은 단테가 입을 연다. 끄트머리가 검게 물든 손은 옷 안쪽을 파고들고는 그 손길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끄러운 히마와리의 등허리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검은 웨딩드레스를 구해주마.”

 “그거 좋네. 당신이랑 똑같은 색이고.”

 

 당신의 음색은 새까만 칠흑이니까. 그에게 고개 숙일 것을 요구하는 작은 손짓이 유려하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듯 높이를 낮춘 얇은 입술 위에 사랑스러운 입맞춤을 흘린 히마와리의 눈가에서 단내가 배어났다. 쪽 소리 따위를 내는 법이 없는 담백한 키스에 단테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부케는 붉은색이었으면 좋겠어.”

 

 우리 둘 다 붉은색이 잘 어울리잖아. 그토록 어울리는 색의 눈을 살풋 접으며 웃어 보이는 얼굴이 붉었다. 단테의 너른 손아귀에는 달게 무른 눈가며 뺨이 아쉬울 정도로 간단히 들어찬다. 그의 손은 오히려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비해 과히 큰 감이 있어, 그와 접촉하지 못한 살갗을 의식하던 단테가 나직이 입맛을 다셨다. 짧은 키스와 어설픈 접촉만으로는 아쉽다는 양, 히마와리가 지닌 모든 붉음을 빠짐없이 맛보고 더듬지 않고서는 감질나서 견딜 수 없다는 양. 어스름한 열을 토해내듯 꿈틀대는 손끝에도 여린 입맞춤이 스친다. 샐쭉 웃어 보이며 입술을 들썩인 히마와리의 입김이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처럼 벼린 눈빛을 무던히도 받아내던 그녀가 돌연 상체를 뒤로 물린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유혹하듯 연인의 목에 가느다란 팔을 감으면서.

 

 “그럼 지금 이건 두 번째 초야가 되나?”

 

 가벼운 목소리 속에 담긴 들뜬 감을 알아챈 단테가 덩달아 몸을 뉘었다. 그의 연인은 이미 제 그림자에 잡아먹힌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단테는 커다란 그늘에 가려 달빛조차 그 피부에 영글지 못하는 연인을 품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칼에서 목선, 팔이며 허리를 따라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몸의 윤곽으로 덧그린 철창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러자 기묘하게도,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의 둔한 마찰음 대신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단테의 입꼬리에 매달려 비뚜름한 사선으로 내닫는 건 몸이 달았다는 듯 입맞춤을 조르는 뭉개진 숨소리다.

 

 “그리 보채지 마라. 불가결의 절차를 생략할 생각은 없으니.”

 

 —두 사람은 서약의 키스를. 언젠가 걸음을 맞춰 가로질렀던 꽃길 위에서 들었던 문장. 단테는 식을 파하고 제 연인이 고대하는 ‘초야’를 맞기 위해 조금은 떨리는 듯한 입술을 머금었다.

 단테는 본디 어디에 입을 맞추길 바라는지 구태여 캐묻는 것을 즐기는 성정의 남자였다. 열에 예닐곱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며 투정 어린 음절로 졸라오지만, 가끔 밭은 호흡과 흐린 음성으로 순순히 원하는 바를 속삭이는 것이 과히 기특한 까닭이다. 짧지만 명확하게 토해내는 욕심을 기꺼이 해소시키면, 흔들리는 초점에도 저를 힘겹게 바라보며 몸을 밀착해 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다. 제게 길든 연인이 제가 즐거이 어루만지곤 하는 부분을 드러내고 은근하게 보채는 건 참으로 흐뭇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이 키스는 단테가 히마와리의 어리광을 받아주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증명하는 식의 마지막 절차로서, 그리고 제 것과 몸을 겹치기 위한 개막의 신호로서의 것이었으므로. 그 구실대로, 히마와리는 산뜻한 접촉으로 시작해서 점점 거칠게 저를 조여오는 단테의 숨을 꼼짝없이 감내해야만 했다. 아니, 감내한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이는 본디 그녀가 바란 것이니, 그 소망에 따른 책임을 온당히 져야 하지 않겠는가.

 

 “—……를 잠시, 그래. 옳지…….”

 

 다정하게 어르는 듯한 음성은 감옥 밖으로 희미하게 새어 나갈 뿐이다. 히마와리의 귓가에나 겨우 파고들 크기로 속삭였으니 당연한 일일까. 단테는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의 출입도 용납지 않을 어둠의 언저리에서 채 문장이 되지 못한 소리만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귀를 기울여보면 그것은 어떤 금수의 단전으로부터 배어난 허기 어린 포효, 혹은 환희를 이기지 못한 울음을 닮은 소리. 침구가 부스럭대는 소리며 천과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두 번째 결혼식에 울려 퍼지는 어수선한 축가와 함께 암야 역시 무르익는다. 달은 어느샌가 기울어 창문과는 접점이 없는 각도에서 빛줄기를 뻗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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