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님의 편지글 ‘맺다’랑 어렴풋이 이어지는 느낌
Dearly Beloved, Dante
미리 적어두겠는데, 나 죽을병 걸린 거 아니야. 큰 사고를 쳐놓고 고백하려는 것도, 중대한 부탁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결혼식 끝나자마자 받았던 편지가 생각나서. 그 답장을 돌려주지 않았던 게 이제야 떠올랐거든. 당신은 답장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했지만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거니까 편하게 읽어줘.
으음, 막상 쓰려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금 막 쓰고 싶은 말이 하나 떠오르긴 했는데, 그건 마지막으로 미룰게. 새삼스럽기도 하고.
일단... 나는 지금 행복해. 시작부터 너무 뜬금없나? 그래도 명목상은 결혼식 날 편지의 답장이니까 적어둘래. 당신이랑 결혼해서, 식을 서둘러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아마 후회한다 해도 당신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애초에 당신이 그럴 여지 자체를 주지 않으니까 당연한 얘기네. 응, 지금까지 당신 덕분에 행복했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쭉 이럴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뭣하면 당신의 후드를 걸어도 좋고! 왜 하필 당신 옷을 거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뭘~ 정 불만이라면 옷 대신 키스를 걸어도 상관없어. 내가 맞았다면 날 행복하게 해준 당신한테 보답의 키스를 해줄 거고, 반대로 틀렸다면 더 정진하라는 의미로 당신한테 키스를 받아낼 거야. 제멋대로지? 그래도 당신이라면 결과가 어느 쪽이든 결국 입을 맞추게 되는 이 조건을 내치지 않을 거 아냐.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해볼까? 최근 들어 느끼고 있는 건데 당신, 이전보다 더 불 같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예전에도 한번 말한 적 있잖아, 당신의 음색이 어떻게 보이는지. 재 속에서 다시 타오를 때만 기다리는 불씨 같은 음색이라고. 그런데 요즘은 작은 불씨 정도가 아니라 너른 불길처럼 보여서 말이야. 뜨겁다고 할까, 짓궂거나 맹렬하기도 하고, 꼭 뭔가를 삼켜버리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특히 내 곁에 있을 때 더 그런데, 그게 당신이 나한테 쏟아내는 다정이랑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을지도 모르겠어. 알잖아, 나는 다정한 당신을 좋아한다는 거.
갑자기 왜 당신의 음색 얘기가 나왔냐면...... 내 품에 더운 열을 가져다주는 당신이 꼭 여름 같다고 느껴서 그런가 봐. 내 이름 말이야, 표기는 다르지만 발음은 영락없이 여름꽃이잖아.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 편지에서 당신의 여름꽃인 내가 영영 시들게 두지 않겠다고 했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 곁이라면 몇 번을 시들어도 몇 번이고 다시 피어날 거라고 확신한다는 소리야.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어쩌면 당신이라는 불길이 내 곁을 머물고 있어서, 그 더운 기운 때문에 나는 당신과 함께하는 매 순간을 여름이라고 착각해서 시기를 불문하고 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여기까지 읽고 나면 그래서 불만이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멋대로 대답해보자면, 그럴 리 없잖아! 나는 오히려...... 뭐라고 해야 할까. 당신과 만나지 못했다면 영영 피지 못했을 거야. 당신이라서, 단테라는 사람이라서. 나는 지금도 절망처럼 다정한 당신의 족적이 내 인생에 남았기 때문에 비로소 만개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괜히 웃음도 나고 당신 얼굴도 보고 싶어지는 거 있지. 그대로 당신 앞에 달려가서는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싶기도 하고. 그럼 당신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눈가나 입술에, 어쩌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키스할 수도 있겠지. 맞아, 당신은 그거 모르지? 그럴 때의 당신이 얼마나 다정한 눈길로 웃는지. 당신조차도 모르는, 이 세상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그 표정이 얼마나 심장에 해로운지 모를 거 아냐. 하지만 내가 모르는 내 얼굴도 분명 당신이 알고 있을 테니까 동점이네.
위에 하고 싶은 걸 적었더니 갑자기 저기에 쓴 그대로 하고 싶어져서 다녀왔어. 이런 건 안 적어도 되나? 그렇지만 당신이 왜 이러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이라고 거짓말한 게 맘에 걸렸거든. 실은 이런 편지를 쓰고 있던 중이라 괜히 들러붙었던 거야. 이걸 읽을 때쯤이면 잊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늦게나마 해명합니다~
......다 써놓고 보니까 대체 무슨 소릴 늘어놓은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당신은 이런 날 사랑하잖아. 이 허술한 편지도 사랑으로 품어줘, 알았지?
아 맞아, 마지막으로 미뤄놓은 게 있었지 참. 예상했다시피 사랑한다는 말이야. 서툰 말이나 문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 이 마음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그건 이걸 다 읽고 난 당신이 더 잘 알고 있겠지? 나야 뭐 언제든 상관없으니까...... 응, 기대하고 있을게. 이 편지를 당신한테 건네는 그 순간부터.
Your Dearest, 氷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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