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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Y/LOG

[반야로/단마리]Bittersweet

by 빙마와리 2023. 2. 14.

2023 드림 발렌타인 합작 :: https://2023valentine.creatorlink.net/

 

 

 

 

 


 

 

 

 

 

 단테는 머리보다도 손이 기억하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문을 열었다. 익숙한 소리를 대동하며 열리는 문은 훅 끼치는 바람과 함께 작은 종을 흔든다. 조금은 때가 탄 걸까, 묘하게 톤이 어두워진 상아색의 장식은 꽃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위풍당당한 고양이 모양이었다. 그 모양대로 동물을 불러들이기 좋을 법한 청아한 종소리가 여상스레 단테의 귀를 간질인다. 마치 그의 고양이 같은 연인을 구슬려 불러들이듯,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마중을 재촉하듯이. 그러나,

 

 “……?”

 

 도어벨이 울렸음에도 집안은 잠잠했다. 외출이라도 한 것일까. 어쩌면 낮잠에 든 것일지도 모른다. 단테는 시시한 추측을 싣고 중문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불투명한 유리로 막힌 중문 너머에서 작게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핫…….”

 “……무슨 꼴이지, 그건.”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의 뒤를 따라, 심홍빛 시선이 거실 소파에 반쯤 누운 인영으로 향한다. 담요로 하반신을 덮은 그 모습은 평소와 같은 복장이라 얼핏 쉬이 넘길 법도 하건만 그 품에 안긴 물건만큼은 평상시의 히마와리가 취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어두운색의 매끄러운 유리병 위에는 유려한 필기체의 라벨이 붙었다. 처음 보는 영문명 아래에는 마찬가지로 낯선 문장이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찍혀 있었다. 붉은 광택의 호일 위에 금색의 띠를 두른 병목을 쥔 히마와리가 머쓱하게 웃어 보인다. 병을 빙 둘러 장식한 채도 높은 붉은색 리본을 손끝으로 배배 꼬면서.

 

 “발렌타인을 그냥 넘기기는 아쉽잖아. 그래서!”

 “올해는 와인이군그래.”

 “응, 라모 씨한테 골라달라고 부탁했지.”

 

 나야 이런 거 잘 모르니까. 괜히 와인병을 담요 아래에 숨은 허벅지 위로 굴리고 병목을 매만지다가, 다시 품에 꾹 당겨오는 일련의 행동이 불규칙하게 이어진다. 술을 즐기지 않는 성정답게 어지간히도 자신이 없는 듯했다. 나름 믿을 만한 상대에게 상담까지 한 모양이지만…….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아 그 선택이 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으리라. 단테로서는 정말이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지만.

 

 “네 취향껏 고르면 되었을 것을.” 그 말과 함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은 히마와리의 그런 미련함마저 사랑하게 된 탓이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는 하나 결국 저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아니던가. 그녀가 무엇을 골랐든 그 선택에 히마와리의 의지가 반영되었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단테에게는 기꺼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히마와리 역시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 작은 머리를 열심히 굴려 가며 고뇌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뭐, 뭐어…… 발렌타인 하면 비터스윗이니까. 안 그래?”

 “네 입에는 쓰기만 하지 않나.”

 

 단테가 아는 한 히마와리의 입맛은 어리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하는 주류라 함은 언제나 술보다는 주스에 가까운 것. 단테 딴에야 와인을 달다고 느낄지언정 히마와리는 그만한 입맛의 소유자는 되지 못했을 터다. 그러나 의문을 건네받은 그녀의 얼굴은 어쩐지 천연덕스럽고, 심지어 들뜬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꼭, 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와인이 비터라면, 스윗은 이쪽.”

 

 석류알 같은 눈동자로 고운 곡선을 그림과 동시에 얇은 손목이 하반신의 담요를 젖혔다. 그러자 드러나는, 채도 높은 붉은색의 리본. 양 무릎을 다소곳이 모은 다리 중 한쪽에만 정성껏 묶인 그것은 매끄러운 광택을 반사하고 있었다. 허벅지에서 발목까지를 칭칭 감은 리본은 마치, 그 역시 단테를 위해 마련한 선물 중 하나라고 피력하는 것 같아서. 그의 얇은 입술에서는 기어코 한숨 같은 웃음이 배어나고 만다. 자세히 보니 그 리본은 와인병에 감긴 것과 똑 닮은 종류였던 것이다.

 

 “‘그것’도 선물인가?”

 “원래도 당신 거지만, 받아준다면야?”

 

 미리 생각해둔 이벤트 대사를 성공적으로 돌려주었다는 일말의 뿌듯함과 의기양양함이 그득 담긴 표정으로 샐쭉 웃는 얼굴이 그렇게 붉을 수가 없다. 본인이야말로 단테의 생에 있어 가장 단 것이리라는 확신이 굳건하게 서린 얼굴이지 않은가. 그래, 구태여 선물 받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제게 종속된 감미다. 평생에 걸쳐 욕심껏 맛보아도 결코 닳지 않는 저만의 것. 그렇다면 급하게 취할 이유 역시 없겠으나……. 단테는 순순히 받아두겠노라는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 ‘달콤한 쪽의 선물’에 손을 뻗는다. 큰 기대를 업고 마련했을 것이 분명한 장식부터 풀어헤칠 요량이었다.

 

 붉은 리본 사이로 드러난 살결에 은근한 손길이 스친다. 리본을 푸는 위치는…… 그쪽이 아닌데. 쭉 잡아당기기만 하면 힘없이 풀려나가고 말 매듭은 그대로 둔 채 단테의 손은 리본 아래를 파고들었다. 묶을 적에 힘을 주어 압박한 탓인지 붉은 천 사이로 봉긋하게 오른 살집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 위를 매만지는 손길이 어쩐지, 평소보다 노골적으로 느껴져 히마와리는 두 눈을 꾹 감았다. 간지러운 수준이 아니라, 단테가 만지고 지나가는 모든 부분에서 뭉근한 열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감각. 가만히 있다가는 그 손끝처럼 새까만 욕망에 잠식당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몇 번이고 잠식당해 그에게 길들어버린 몸임에도.

 

 “잠, 깐만, 일단 와인부터 어떻게……!”

 “호오, 빠져나갈 속셈인가?”

 “내가 빠져나가봤자 당신 손바닥 안일 텐데 어딜 가겠어.”

 

 진짜로 와인병이 걱정돼서 이러는 거니까! 이대로 단테를 멈춰 세우지 않는다면 품 안의 와인은 완전히 뒷전이 되었을 테고, 급한 대로 어디 대충 내려놓은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가 병이 굴러가다 못해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끊을 수 있는 시점에 끊어놔야지, 더 늦기 전에…….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샌가 단테에게 휩쓸리는 패턴에 익숙해진 히마와리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딱 좋을 시점에 제지당해버린 단테의 표정은 제법 귀엽기도 했다. 그 속내를 누군가 알아챘다면 콩깍지라며 질린 표정을 짓고도 남을 감상이었다. 그마저도 금세 엷은 웃음소리로 승화하고 말았지만.

 

 “그렇군. 기회가 지금뿐인 것도 아니니.”

 “그, 그렇지~”

 “말이 나온 김에 와인부터 즐겨보도록 할까.”

 “응! 아, 내 잔은 준비 안 해도 괜찮아.”

 

 언제 아쉬워했냐는 듯 성큼 몸을 일으켜 부엌 찬장을 여는 단테의 뒤에 대고 히마와리가 종알거린다. 몇 년 전 집들이 선물이랍시고 받았던 유리잔 2개를 집어 들던 단테의 손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잔도 라모의 선물이었던가. 히마와리가 녀석에게 추천받았다고는 하나 사실상 자신과 히마와리, 두 사람을 위한 와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술에 약하다지만 시음마저 마다할 정도인가. 시답잖은 상념이었다. 자연스레 이어진 히마와리의 음성 한마디에 쉬이 끊어지고 말.

 

 “나는 단테랑 키스해서 살짝 맛보는 걸로 만족할 거니까.”

 

 탁. 테이블에 유리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잔에 비친 단테의 표정은 어떠했던가. 히히덕거리는 모양새로 웃은 히마와리의 발간 뺨만이 알 것이다. 그 얼굴이 어떤 내용의 대꾸를 대신했는지, 그 눈빛이 어떤 정을 엿보이고 무엇을 탐하여 저를 훑고 지나갔는지. 잔을 채운 와인이 기척도 없이 비는 소리 너머, 자신이 내뱉은 도발과도 같은 선언이 어떤 결과를 불러들이는지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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