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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Y/LOG

[반야로/단마리]お前の好み

by 빙마와리 2022. 9. 14.

~2022 단테님 생일 기념 로그~

글에도 스리슬쩍 언급 넣어놨지만 저는 다크 초코 케이크를 주문했어요 당신 몫까지 잘 먹을게 좋아해 사랑해ㅐ

 

 

 

 

 


 

 

 

 

 

 한때 특별했던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색이 바래기 마련이다. 좋아했던 옷, 즐겨 먹던 음식, 자주 찾던 장소, 그리고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념일. 그와 비슷한 색이나 향, 분위기만 마주쳐도 두근거리던 박동은 과거의 것이 되어 점차 설렘에 무뎌지고 만다. 그렇게 자연스레 떠나보내는 ‘특별’ 중 하나는 생일이었다. 그런 생일날, 단테는 목을 꼿꼿이 세워가며 제게 향한 붉고 투명한 눈동자 속의 아쉬움과 일말의 배신감을 맞이한다. 무얼 생각하는지 퍽이나 알기 쉬운 눈을 한 그녀는 방금 막 연인의 생일이 오늘임을 깨달은 참이었다.

 9월 14일. 단테는 자신의 생일을 가리키는 숫자의 나열에 큰 의미를 둔 기억이 없다. 단순히 개인의 정보 값일 뿐인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제 주변의 동료들이었다. 소소한 선물을 건네거나 웬일로 제 고집에 어울려주는 등 특별한 날이라는 명목으로 유난을 떨어가며 편의를 제공하는 그들이 있어 단테는 자신이 한풀 꺾이기 시작하는 더위 속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잘게 남은 늦여름의 열기가 하늘을 새파랗게 물들인다는 것도, 7시가 지나기 전에 떠오르는 달은 둥글게 여물어 그의 본능을 곧잘 자극한다는 것도 알았다. 야외 라이브 도중 땀방울을 식히는 바람의 기꺼움과 라이브가 끝난 후 캔맥주 따는 소리의 청량함마저 새삼스레 알고 말았다. 동료를 곁에 둔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았건만 단테는 그들을 잃은 후에도 상흔처럼 남은 그리운 감각을 통해 제 생일을 짐작케 되었다. 들꽃의 허리가 휘는 소리나 음료 캔의 물방울이 엉겨 붙는 감각이 유독 어수선한 날이면, 그는 알고 싶지 않아도 어렴풋이 깨닫고 마는 것이다. 아홉 달의 보름이 가깝다는 것을.

 하여 돌아온 에덴이었다. 번거로이 생일을 기념할 생각 따윈 없다. 축하를 바라는 것 역시 아니었다. 그저, 언젠가 이 시기를 요란스레 헤집고 빠듯하게 채웠던 웃음소리를 올해는 다시금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단테는 진즉 의미가 퇴색한 기념일에 제 연인을, 마세 히마와리를 덧대어 간만의 소란을 맛볼 셈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녀에게 이 날짜에 어떤 이름이 붙는지를 알려주지 못한 탓에 사달이 나고 말았지만.
 당일이 되어서야 그의 생일임을 안 히마와리는 크게 충격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단테를 바라보았다. 왜 지금 알려줘, 지금이라도 선물을, 뭘 주는 게 좋지, 뭔가 따로 원하는 건……. 어떻게든 제 생일을 챙기려 애쓰는 기특한 연인의 어깨를 웃음으로 감싸 안은 단테는 문득, 기념일의 주인공으로서 요구하기 어렵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바라는 것이라면 있지. 그가 입을 열자 황혼빛 머리칼을 넘긴 귀 끄트머리가 작게 쫑긋거린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소리 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한결 유쾌해진 음성으로 히마와리에게 속삭였다.

 —오늘 하루를 내게 바쳐, 네 취향을 오롯이 드러냈으면 하노라고.

 

*   *   *

 


 “……그런 말을 해도 말이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히마와리가 편의점의 문을 열어젖히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맑게 튀었다.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벽면 위쪽의 시계는 막 12시를 지난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앞둔 지금 히마와리가 단테와 함께 편의점을 찾은 것은 점심 메뉴를 고르기 위함이다. 에덴의 고용 조건에는 분명 식사 제공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실상은 마스터와 미코가 시켜 먹고 남은 초밥의 초생강이 제공될 뿐이었다. 오죽하면 배를 곯다가 쓰러진 적도 있겠는가. 그런 것보다는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챙기는 게 낫지. 히마와리는 단테에게 신세 한탄을 하며 한숨을 내쉰 직후 떠오른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웃고 있지만 어쩐지 대놓고 인상을 구기는 것보다 무섭다고 할까…… 굉장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정. 뭐, 어차피 그런 단테를 감당해야 하는 건 불쌍한 피고용인인 자신이 아닌 악덕 업주 쪽일 테니 괜히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 테다.

 “근데 진짜 뭐든 골라도 돼?”
 “지갑 사정에 연연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취향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고작 편의점에서 마음껏 골라 담는다고 해봤자 얼마나 나오겠냐마는. 기대치가 낮은 천진한 물음에서 제 연인의 생활 한 켠에 악착스레 자리 잡은 빈곤이 묻어나는 것 같아 단테는 혀를 차는 대신 못마땅한 기색으로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갑 사정이 퍽이나 박한 모양이었다. 전 세계에 하나뿐인 이레귤러 레벨의 튜너라는 입지와 궁핍이라는 표현만큼 어울리지 않는 게 없을 터인데. 어쩐지 일본에 돌아올 때마다 가게의 오너라는 녀석이 묘하게 불편해 보이더라니, 제 것인 히마와리를 상습적으로 홀대해온 사실이 들킬 것을 우려했으리라. 감히. 단테는 속으로 마스터를 향한 앙심을 뇌까리면서도 눈으로는 편의점 내부를 이리저리 누비는 히마와리를 고요히 좇았다. 음료 코너를 빠르게 훑다가 간식 코너를 기웃거리더니, 이내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 빈손으로 도시락 코너에 다다라서는 정지. 위아래로 빼곡하게 진열된 다양한 도시락들을 앞에 두고 눈을 반쯤 찡그려가며 고민하다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멈춰선 순간 표정이 밝아진다.

 “이거 맛있던데. 한 번밖에 안 먹어봤지만.”
 “기회가 닿질 않았나?”
 “아니, 그건 아니고, 비싸서…….”

 얼마나 대단한 도시락을 두고 비싸네 어쩌네 하나 싶어 히마와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2000엔은커녕 1000엔도 하지 않는 계란 얹은 햄버그 도시락 하나가 제법 빈자리가 넓은 진열대 위에 남아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소스를 듬뿍 끼얹은 햄버그 옆에는 새우튀김이 두어 개, 아스파라거스와 볶음밥까지 어우러진 도시락은 구성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수준. 그의 체격만큼이나 넉넉한 단테의 지갑이 이 정도로 타격을 입을 리 없었다.

 “……아무래도 네 급여에 대해 놈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군.”
 “오? 단테가 나서주게?”

 마스터가 단테 눈치 좀 보는 것 같던데, 당신이 말을 꺼내면 나도 박봉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히히덕거리며 도시락을 집어 든 히마와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연한 색의 푸딩과 이로하스 한 병을 도시락 위에 얹고 총총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 옆의 즉석식품 판매대에서 감자튀김까지 야무지게 골라놓고 빙글 뒤를 돌아 ‘이 정도는 괜찮지?’ 하는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서너 발자국 뒤에서 그녀의 선택을 묵묵히 지켜보던 단테는 갑작스레 시선을 맞춰오는 연인의 팔랑거리는 속눈썹에 허, 한숨처럼 웃고 만다. 제 몫의 도시락과 보리차 한 병을 계산대에 함께 올려놓고 당연하다는 듯 히마와리의 어깨에 팔을 걸치자 그 무게를 자연스레 받아들인 그녀가 뜨거운 팔에 뺨을 살짝 기댄다.

 “저번에 사에 씨한테 얻어먹은 도시락이 이거였거든. 덕분에 포식했지~”
 “사에?”
 “아, 페어에프네 매니저! 가끔 남는 도시락을 주는데 그날은 웬일로 햄버그 도시락이 남았대서. 아마 페어에프가 일부러 남겨준 거겠지만?”
 “여태 그런 식으로 끼니를 때운 건가.”
 “뭐~…… 그렇지. ‘마’로 시작하는 누구 덕분에.”

 불만스레 종알거리며 도시락이 든 비닐봉지를 받아 들자마자 경쾌하게 휘두른 히마와리가 다시 맑게 웃었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평소의 식사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봉지 속 품목들은 그 출처가 편의점이라 한들 빠듯한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한 듯했다.

 “나 햄버그랑 푸딩 좋아해. 감자튀김도 진짜 좋아하고. 그러니까…… 당신이 알고 싶다는 내 취향이라는 게 이런 거 맞아?”
 “그래.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니 편히 생각하면 될 것을.”

 새삼스레 제 식성을 고백하는 눈가를 쓸자 머쓱한 웃음소리가 뭉그러진 채 튀어나온다. 그래도 명색이 생일맞이 부탁인데 조금은 거창한 걸 해주고 싶어서. 미련을 저버리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고는 붉은색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던 히마와리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단테 건 갈비 도시락이지? 이따 한 입 먹어봐도 돼?”
 “너는 좀 더 욕심부리는 법을 알 필요가 있겠어.”
 “……그럼 두 입?”
 “그게 최선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응수하자 괜히 시선을 돌리는 것이 밉지 않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과히 좀스럽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지. 그 증거로 봉투를 휘두르는 팔에 힘이 들어가 속력이 높아지고 있지 않은가. 아마 그 원동력은 민망스러운 열일 터. 앞뒤를 오가며 잔상을 남기는 궤도가 빙글빙글 현란하기만 하다. 슬슬 내용물이 걱정되는 움직임에 단테는 붕붕거리는 손목을 가볍게 가로채고 봉투를 빼앗았다. 도시락 포장 용기의 투명한 뚜껑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다행히 음식물들의 위치가 다소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단테에게 손목을 붙잡혀 그대로 품에 안착한 히마와리의 얼굴이 그 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흐트러지고 말았지만.

 

*   *   *

 


 두 종류의 도시락을 절반씩 나누어 먹은 지 한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히마와리가 단테의 손을 끌고 간 곳은 에덴에서 멀지 않은 카페였다. 슬슬 단 것을 보충해줘야 할 타이밍이라나 뭐라나. 적당한 위치에 적당히 깔끔한 인테리어로 번듯하게 들어선 가게의 익숙한 종소리와 함께 들어선 히마와리는 단정한 손글씨로 적힌 메뉴판을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6할 정도가 차 있는 테이블에 눈길을 준 단테는 카페에 가득한 원두 향과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담소 소리를 깊게 들이마시며 히마와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기울였다. 셋으로 나누어진 메뉴판 중 두 번째 메뉴판의 왼쪽 아래에 다다라 그녀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단테는 확인한다.

 “헤이즐넛 모카…… 저거 맛있겠다.”
 “그런 걸 좋아하나?”
 “응, 달달한 커피 종류는 다 좋아해서 한 번씩 마셔보려고. 여기 생긴 지 얼마 안됐거든.”

 단테 몫의 아메리카노까지 능숙하게 주문을 마친 히마와리는 대기 번호가 적힌 영수증을 받아 들고 빈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곧장 테이블에 엎어져 음료가 늦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우물거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쇼랑 노닥거리면서 시간 좀 때우다 돌아가는데 말이야. 걔가 좀 건방지고 짜증 나긴 해도 나한테는 잘 맞춰주니까……. 테이블에 볼이 눌려 뭉개지는 발음에도 단테는 그 내용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보통 여기에 혼자 오지는 않나 보군.”
 “쇼라고, 나한테 거하게 빚진 놈이 하나 있어서. 빚 탕감할 겸 걔 끌고 와서 열심히 얻어먹는 중.”

 뭐, 얻어먹는 패턴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요즘에는 본인이 먼저 가자고 말 꺼내긴 하더라. 여기에 새 카페 생긴 것도 걔가 데려와 줘서 알았어. 낯선 이름에는 낯선 일상의 흔적이 따라붙는다. 단테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편린들. 무던한 음성으로 종알거리던 히마와리가 묘하게 지긋한 시선을 느낀 건지 여전히 테이블에 뺨을 댄 채 눈만 살짝 치켜올리며 샐쭉 웃는다. 왜, 신경 쓰여? 짧고 당돌한 물음에 단테의 눈썹이 비뚜름히 올라갔다. 겨우 그런 인물에게 신경 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럴 필요 역시 없었다. 히마와리의 눈빛만 봐도 금세 알 수 있지 않은가, 저 투명하고도 붉은 눈동자 속에 여울지는 적나라한 애정이 속삭이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저 외의 다른 이에게 고개 돌릴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다만 달리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이왕 빚을 탕감해줄 목적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털어먹는 게 좋겠지.”
 “아하, 신경 쓰는 건 그쪽인가~”
 “편의점에서 그랬듯 옹졸하게 눈치 보지 말고.”

 옹졸……. 신랄하기까지 한 평가에 벌떡 몸을 일으키니 보란 듯이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어 젖히는 단테와 눈이 마주친다. 내가 옹졸한 게 아니라 단테랑 쇼가 유독 통이 큰 거겠지! 나는 악덕 사장한테 최저임금 이하로 부려 먹히는 소시민이지만 둘은 잘나가는 밴드맨이니까!! 억울한 마음에 바락거려도 단테는 그저 턱을 괸 채 마치 그렇다고 쳐주마 하고 이야기하는 듯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좋게 말하면 응석을 받아줄 때의 표정, 나쁘게 말하면 어린애 취급을 하는 표정이라고나 할까. 뚱하니 그 심홍빛 눈길을 받아내던 히마와리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의자 다리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주변의 소란에 녹아들었다.

 “도망갈 셈인가?”
 “음료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딜 가겠어. 쿠키 슈나 가져올 거야.”

 눈치 보지 말고 얻어먹으라면서? 작게 부풀린 볼을 내비치고는 성큼성큼 카운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꼭 중대한 결심을 한 것처럼 보였다. 마음껏 털어먹으라는 말을 듣고도 손바닥만 한 디저트를 추가 주문하는 게 고작인 주제에. 단테는 실소를 숨기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큭큭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하여간 소박하기는. 와중 많고 많은 디저트 중 고른 것이 슈크림이라는 걸 기억해둔 단테는 웃음이 가시고 한결 느슨해진 눈길로 히마와리를 바라보았다. 언제 토라졌냐는 듯 말갛게 무른 표정과 들뜬 발걸음. 조심스레 든 트레이에는 음료 두 잔과 자그마한 디저트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   *   *

 


 카페에서의 느긋한 여유도, 너무 늦지 않았냐며 마스터의 잔소리를 듣는 에덴에서의 시간도 모두 히마와리의 일상. 아직 그 곁에 정착하지 못한 단테에게는 그녀가 향유하는 보통의 시간을 파악할 기회가 부족했다. 하여 그는 아직 오래도록 머물 수 없는 안정과 조금의 소란을 찬찬히 머금으며 그 속에 녹아든 그녀의 기호를 맛보고자 한 것이다. 점심시간 다음은 간식 시간, 그 다음은 저녁 시간. 히마와리가 제안한 저녁 메뉴는 에덴 근처에 있다는 가게의 우동이었다. 우동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국물이 있는 음식은 거진 다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던가. 누군가가 선호하는 메뉴 따윈 몰라도 사는 데에 큰 지장은 없고, 하물며 단테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큰 뼈대인 드럼 연주와도 전혀 상관없는 정보 값이다. 허나 동시에 소소한 기호가 쌓여 누군가의 삶과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법이므로, 단테는 ‘싫어’보다 ‘좋아’가 월등히 많은 히마와리의 음성에 기꺼이 귀를 기울였다.

 우동 국물이랑 파랑 같이 떠먹는 거 좋아. 유부에 국물 스며든 것도 좋고.
 난 튀김 우동 시켜도 튀김은 그대로 냅두는 편인데. 왜, 튀김 부스러기도 국물 먹어서 흐물흐물 부서지면 맛있잖아. 엑, 단테는 별로야?
 돌아가는 길에 있는 과자점 같이 갈래? 민트가 소개해줘서 알게 됐는데, 거기 휘낭시에랑 레몬 마들렌 엄청 맛있거든~
 맞다, 당신 생일 케이크로 이건 어때? 그래도 생일인데 케이크도 없이 지나치긴 아쉽잖아. 다크 초코니까 그렇게 달지도 않을 거고…… 그으래, 내가 먹고 싶어서 벼르던 케이크다, 왜!
 집 근처에 마키소가 기타 연습하러 자주 오는 공원이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기타 소리랑 풀벌레 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게 좋아. 오늘도 들릴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단테, 인형 뽑기 잘해? 아니 그냥, 저기 인형뽑기 기계가 있길래. 저런 콩눈 인형 하찮아서 귀엽단 말이지. 침대 위에도 몇 개 있고…… 응, 좋아해.

 어떤 것은 맞물리고 어떤 것은 비껴간다. 또한 알지 못하는 이의 이름이 자잘하고도 깊게 침범해 있기도 했다. 모든 부분이 제게 기꺼운 것은 아니나 결국 그가 품어 마땅한 것들. 완벽하게 이해하고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으나 최소한 기억해두고 싶다, 그리고 그 정도만으로도 생일을 기념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단테는 새롭게 알게 된 히마와리의 평범한 나날을 강하게 붙들어 쥐었다. 그러나 14일은 아직 다 지나지 않았고, 그만큼 그의 손아귀에는 무언가를 더 담아 넣을 빈자리가 넉넉히 남아 있었다.

 

*   *   *

 


 ……나 너무 먹는 얘기만 하지 않았나? 머리카락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뒤로한 히마와리가 멍하니 생각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점심 메뉴, 카페 메뉴, 저녁 메뉴, 단골 과자점 얘기만 잔뜩 늘어놓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탓이었다. 내가 단테의 식성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단테도 내 식성에 대해 모를 테니까 이참에 알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어쩐지 이런 것 외에도 단테가 파악하고자 하는 게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 둘이서만 충족시킬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취향이라든지. 정말 단테가 파악코자 하는 것일지, 혹은 자신이 단테에게 알려주고 싶을 뿐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끝내 알게 될 것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스며들 것들. 단테는 나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 하나 가볍게 여기지 않으니까, 그런 내 취향 중에서도 당신이 응당 기껍게 여길 만한 것. 오늘처럼 당신만을 위한 날 충분히 선물이 되어줄 만한 것을 나누고 싶어서.

 피부에 맺힌 물방울을 수건으로 훑고 섬유유연제 향이 훅 끼치는 잠옷에 팔다리를 끼워 넣으면 하루가 끝나간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새 수건을 꺼내 물기가 다 가시지 않은 머리카락을 받치고 욕실 문을 열어젖히니 진작에 씻고 나온 단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티에 편한 바지. 그의 편안한 차림새를 누릴 권리는 제게만 허용된 것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배어났다.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듯 짐짓 고민하는 척을 하던 히마와리는 이내 보송한 수건을 목에 걸친 채 단테의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단테, 나 머리 말려주면 안 돼?”

 익숙한 향이 유독 진했다. 샴푸와 바디 워시 향이 어우러진 산뜻하고 깔끔한 향기, 히마와리의 향이 코끝에 자욱한 안개처럼 머문다. 그리고 단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 미로 같은 미지를 헤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성정의 소유자였으므로. 흔치 않은 연인의 어리광을 달갑게 받아들인 커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부드럽게 물기를 털기 시작했다. 나 다른 사람이 머리 만져주는 거 좋아하는데, 당신이 이 기회에 만져줬으면 해서. 담백하게 꺼내놓는 말은 어쩐지 고양이를 다룰 때의 참고 사항처럼 들려와 낮은 웃음소리가 샌다.
 방 안에서 동세를 이루는 것은 수건과 함께 일정하게 오가는 단테의 팔과 바닥으로 추락하는 물방울들의 궤도뿐. 잔잔한 고요만큼 수마를 불러내기 좋은 환경은 없노라고 직접 증명이라도 하듯 고개를 꾸벅이는 히마와리의 움직임이 섞일 때 즈음, 단테는 손을 멈추었다.

 “……제법 피곤한 모양인데.”
 “으응, 기분 좋아서 노곤해지네…….”

 긍정의 답이 떨어지자마자 단테의 팔이 왜소한 어깨를 감싸 제 품으로 당겨 안는다. 덜 마른 머리카락이 옷을 적실 텐데, 그런 것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등받이를 자처한 그의 숨소리는 나직하기만 했다.

 “그런가, 이런 게 좋다고…….”

 새롭게 안 사실을 곱씹듯 말끝을 흐린 단테의 손이 축축한 머리칼을 빗어 내린다. 습기에 뭉친 가닥들을 어루만지고 엉킨 자리를 몇 번이고 매만져 풀어내는 손길은 금세 곱슬거리는 파도에 적응하여 능숙하게 그 속을 헤집는 것이었다. 기분 좋다, 어쩐지 붕 뜬 기분도 들고……. 숨을 깊게 내쉬는 소리와 함께 품에 기대는 무게가 늘었다. 단테는 그 무게를 가뿐히 집어삼키면서도 묘하게 아쉬운 감각에 하얀 목덜미를 검은 손끝으로 괜히 두어 번 건드리다 기어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더운 숨결이 닿는가 싶더니 얇은 입술이 목을 베어 무는 감각에 히마와리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이윽고 가볍게 잘근대는 감각과 알싸하게 퍼져나가는 통증이 입 맞추는 소리와 함께 잇따랐다. 물기를 머금어 퍽 민망스럽고 노골적인 소리였다. 어차피 머리카락에 가릴 테니 흔적이 남는 건 상관없지만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단테.”
 “그래, 듣고 있다.”
 “오늘 하루, 괜찮았어?”

 아쉬운 이유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작정 이 욕심을 채워주길 요구하는 건 창피하니까. 히마와리는 괜한 질문을 꺼내며 제 속내를 정리했다. 좀 더 그럴듯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보잘것없는 내 취향에 어울려주느라 심심하지는 않았어? 당신이 원했던 게 정말 이런 게 맞아? 만약 정말로 이런 걸 원했다면, 오늘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당신한테 알려주고 싶은 취향이 하나 더 있는데. 발목까지 차올랐다 물러난 잠기운의 녹녹함은 응석으로 변질하여 히마와리의 사고를 본능에 충실한 방향으로 잡아끌었다.

 “사소한 것에도 ‘좋다’는 말을 붙여가며 종알거리는 네 낯이 기특하지 않을 리가 있나.”
 “응…… 음? 그랬던가?”
 “그랬지. 네 입맛이 더할 나위 없이 저렴하게 먹히는 축에 속한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뭐야, 그게.”

 하긴 먹는 얘기만 잔뜩 했으니 당연할지도. 느른한 기색의 얼굴에 머쓱한 표정이 스쳤다. 있잖아, 단테. 그런 거 말고, 오늘이 가기 전에 꼭 당신이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어. 앞으로 써먹기도 좋을 거고, 분명 참고가 될 테니까. 마세 히마와리는, 엄밀히 말하자면 응석 자체를 어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서툰 성정일 뿐. 자신이 상대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검열이 어리광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잠결의 포근한 안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금, 더욱이 수마가 당사자조차 자각하지 못한 마음의 장벽을 무의식중으로 허무는 데에 능한 마귀인 이상, 히마와리는 제 희망 사항을 더없이 솔직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엷은 목소리는 고작 손가락 두 마디 거리에서, 속내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눈동자는 고작 한 뼘 거리에서 단테를 맞이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줘, 어느 쪽이고 붉디붉은 색이 속닥인다.

 “나, 키스할 때 당신이 입천장 문질러주는 게 좋아.”

 농익은 과실의 색을 띤 입술에서 터져 나온 것은 예상했되 예상치 못한 말. 제 의지로 내뱉어놓고 뒤늦게 꾹 삼킨 민망함이 눈가에 발갛게 배어나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대꾸 없이 이어지는 말을 기다릴 뿐이다.

 “목을 받쳐주는 것도 좋고, 타이밍 좋게 숨 쉴 틈을 내주는 것도 좋고, 또 키스가 끝나면 얼굴 만져주는 것도 좋아.”

 전부 단테가 해주는 거라서 좋은 걸지도 모르지만. 희미하게 중얼거린 말은 어렵지 않게 단테의 귀에 닿았다. 과연 제게 길이 든 연인다운 말이다. 제 손길 한 마디 숨결 한 줌에 차츰 물들어 자신이 아니고서는 꽃망울을 벌리지도 못하게 매여버린 저만의 여름꽃이 흡족할 따름이었다. 단테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마와리는 다시금 입을 연다. 그래서 말인데, 그러니까—

 “키스, 하자.”

 당신 생일이잖아. 생일 선물로 내 취향을 알려달라고 했지. 나는, 나 혼자서는 절대 충족할 수 없는 욕심을 당신이 채워줬으면 좋겠어. 당신이 맞춰줬으면 좋겠어.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취향을 나누고 싶으니까. 단테의 품에서 방향을 돌려 그와 마주 보는 자세로 무릎을 세운 히마와리가 거듭 입술을 달싹이며 칭얼거린다. 하자, 할래, 하고 싶어, 응?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뺨이며 입가에 소리 없이 제 숨을 붙였다가 떼어가며 안달을 내는 모습은 절로 탄식이 배어날 만큼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허, 한숨처럼 웃은 단테는 벌써부터 힘이 들어가 뻣뻣하게 긴장한 목덜미를 넉넉한 손바닥으로 감싸 제 가까이에 끌어오며 대답을 대신했다. 이렇게 받치는 게 좋다고 했던가…….

 “그 정도야 구태여 말로 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입으로 직접 발음하는 것을 들으니 새삼스레 의식하게 되는군. 희미하게 흩어지는 웃음소리를 끝으로 둘 사이의 거리는 제로에 수렴한다. 빠듯한 만족감이 숨을 타고 달큰하게 퍼져나가기에 꼭 알맞은 거리였다.

 단테는 진작부터 히마와리의 키스 취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오히려 모르기가 더 힘들 것이다. 아무렴, 상대가 그 히마와리이지 않은가. 좋고 싫음이 명확하고 속내를 감추는 것 역시 서툴기 짝이 없는, 말 그대로 투명하다는 표현에 더없이 부합하는 그의 연인. 단테는 히마와리의 버릇을 안다. 키스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때면 보다 더뎌지는 혀의 움직임과 길어지는 날숨을, 데인 듯 뭉근해지는 손바닥과 아주 미세한 각도로 세우는 손톱을, 애가 탄다는 듯 제 몸 가까이에 붙여오는 허벅지의 움직임까지. 단테는 제가 선사하는 애정에 녹아내리는 순간의 히마와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쩌면 그녀 자신보다도.
 진즉 알고 있던 사실을 되뇌며 단테는 기꺼이 그녀의 요구사항에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목을 받쳐 감싼 손으로 경직된 목덜미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한편 굳어버린 히마와리 대신 자신이 고개를 꺾어 숨을 들이켤 틈을 내어준다. 혀끝을 세워 영원히 길들 것 같지 않은 입천장을 가볍게 두드리다 천천히 문지르니 제 팔을 쥔 채 달아오른 손바닥이 움찔거리며 굽어들었다. 애원하는 모양새로 힘이 들어간 손짓에 응해 몇 번이고 숨을 휘어간 끝에 입술을 떼니, 색색거리는 호흡을 정리하려 애쓰는 얼굴이 기특해 손을 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 불쑥 들어선다. 히마와리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면, 자신은 그녀의 턱을 쥐어 제게 시선을 고정하고 싶었을 뿐 뺨을 포함한 얼굴 전체를 어루만질 셈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 작은 얼굴을 섬세하게 다루기에 걸맞지 않도록 광막한 손아귀 탓이니 알 만하지만.

 칠흑색 그림자는 열에 취한 눈빛으로 말간 웃음을 흩뜨리는 제 것과의 거리를 거듭 좁혀 입술 위에 내려앉는다. 그가 아는 한, 히마와리의 취향은 그녀가 직접 실토한 것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을 것이었다. 아직 자각하지 못한 건지 막상 말로 내려니 떠오르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본인이 먼저 보챈 이상 유야무야 넘기지는 않으리라. 단테는 썩 마음에 찬 생일 선물을 받아낸 듯 흡족한 표정으로 선물의 속을 파고들어 품을 여미기 시작했다. 아직 그의 생일은 끝나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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