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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Y/LOG

[반야로/단마리]새벽의 끝

by 빙마와리 2022. 4. 18.

잠든 상대와의 약 섹슈얼 언급 有

 

 

 

 

 


 

 

 

 

 

 나직이 쏟아내는 달빛의 눈웃음에 응하듯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흐릿한 시야에 들어차는 푸르스름한 어둠. 히마와리는 속눈썹 사이사이에 밤공기가 스미는 것을 느끼며 몸을 들썩였다. 허리께에서 느껴지는 두텁고 따듯한 체온은 단테의 것이다. 일정한 박자로 드나드는 숨과 고동으로 하여금 히마와리는, 현 시각이 단테가 잠들었을 정도로 깊은 새벽이라는 걸 알았다. 제 연인은 어지간히도 잠이 없어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눈을 붙이는 인물이 아니던가.

 

 왜 이런 시간에 깬 건지.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어 여전히 무거운 눈꺼풀을 두어 번 끔벅이다 이내 억지로 그 틈을 닫아보았다. 창문 너머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적막을 비집고 들어온다. 아주 가까이서 단테의 가슴께가 오르내리는 소리도, 그 움직임에 쓸리는 천의 어렴풋한 마찰음까지도 생생히 들려왔다. 아, 큰일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의식하기 시작하면 의식은 점점 선명해져서……. 속으로 끙 하고 앓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뒤척이던 그때, 단테의 고른 숨이 엇박자로 끊어졌다.

 그것을 알아챌 틈도 주지 않고 목덜미와 뒤통수를 너르게 감싸는 손길이 뜨겁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능숙하게 어루만지며 고개를 제 품으로 끌어오는 손끝은 새벽의 공기와 같은 검정. 그 사실을 상기하고 있자니 꼭 어둠에게 애무받는 것 같아서, 히마와리의 눈매를 억지로 닫아두었던 강제력이 약해진다. 졸린 기색이 역력한 눈은 그제야 스르르 감겨오는 것이었다.

 

 “……자장가라도 불러줘야 하나?”

 

 짐짓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목소리는 짓궂고, 또 낮은 음역으로 잠겨 있다.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지만 단테가 원하는 반응은 사과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이 잠에서 깬 직후 덩달아 깨어나 자장가를 제안하는 그 다정이 마냥 미안하지만은 않아, 오히려 기쁘다는 것도 순순히 인정할 수 있었다. 잠기운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곤 하였으므로. 히마와리는 서서히 무게를 더하는 눈꺼풀에 굴복하며 느릿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괜찮아. 단테 품, 따듯하고 당신 향도 나고…… 머리 만져주는 것도, 기분 좋아서…… 흐아아암…….”

 

 단테의 손길에 순응하여 너른 품에 고개를 묻자 사랑해 마지않는 다정의 온도와 향기, 그리고 큭큭거리는 낮은 웃음소리에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기분 좋아서 졸려……. 정말이지 기꺼운 상념을 끝으로 히마와리의 호흡이 고르게 정돈된다. 단테는 제 연인이 다시금 잠들었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숨이 닿는다. 얕은 입김이 제 가슴팍을 간지럽히는 박자를 가만히 헤아리던 단테는, 그것이 제 심장박동과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아가 히마와리의 박동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마저도.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웠다. 작은 머리를 내내 매만지던 그의 손이 차츰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얇은 목의 뼈대를 타고 내린 검지와 중지가 살결을 더듬는다. 움푹 들어간 등줄기를 차례로 훑으며 감각을 예리하게 벼리는 그 모습은 마치 정사를 앞둔 사내의 그것이었다. 허나 단테는 제 어리고 또 여린 연인을 위해 기꺼이 감내할 줄 아는 이였으므로, 수마에 빠진 히마와리의 등허리를 몇 번이고 어루만져 그 감촉을 곱씹을 뿐이다.

 

 그녀의 몸을 취하기에는 조금 과한 감이 있는 굵은 손가락 끝으로 유독 부드러운 곡선 위의 살결을 긁자, 간지러운지 채 말이 되지 못한 칭얼거림과 함께 품으로 파고들어 온다. 어깨가 살짝 솟은 듯해 귓가에 대고 웃음 섞인 목소리를 흘려내니 금세 긴장을 푼 듯 가라앉는 것이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반대편 팔로는 둥근 어깨를 감싸 쥐고 다시 손을 움직인다. 과감한 사이즈의 손은 모처럼 뼈마디 두어 개를 타고 내려가다가도 못내 아쉽다는 듯 한 마디를 더 올라오고, 서너 뼘을 급하게 내려가다가도 이내 반 뼘쯤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지근한 오르내림을 반복한 끝에 검은 손끝은 양옆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닿았다. 어떤 여신의 보조개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물이 빠져나간 샘의 흔적처럼 느껴지는 그 자리를 몇 번이고 둥글게 덧그리던 단테는 곧 그 위로 힘을 강하게 주어, 히마와리의 하체마저 제 가까이로 끌어온다. 오롯이 껴안아 깊게 여민들 여전히 제 품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부피의 몸을.

 

 “으응…….”

 “……이제 와서 끙끙대기는.”

 

 등을 내어줄 때는 별 반응도 않더니만. 허탈한 낯에는 잠기운이 서려 있었다. 단테는 찬찬히 눈을 깜박이면서, 괘씸한 마음을 담아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위에 입술을 짓눌렀다. 제 연인의 입맞춤과는 달리 들으란 듯이 쪽 소리를 내고 떨어진 자리에는 그 무게와 심술만으로 새긴 붉음이 남았다.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심홍빛 눈은 점점 가늘어진다. 이윽고 푸른 어둠 속에 그 누구의 시선도 빛을 발하지 않게 되면, 그제야 달이 서서히 이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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